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SF 단편

허블 출판사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저)』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기본 정보
    1. 저자
    2. 주요 사적
    3. 내용
    4. 단어 정리
  2. 글귀
  3. 후기
    1. 과학기술과 상관없이 우리의 고민은 비슷하다: 나와 다른 너, 우리와 다른 너희에 대하여

기본 정보


저자

** 김초엽(1993.02.01 ~ ) **

포스텍(포항공과대) 화학과 졸업 포스텍 대학원 생화학 석사 졸업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주요 사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방금 떠나온 세계』(2021) 『므레모사』(2021) 『파견자들』(2023)

내용

SF 단편, 스페이스 오페라(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은 SF 소설)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데이지가 소피에게 순례를 떠나기 전에 이른 순례를 결심한 이유를 남긴 편지글.
    • 데이지가 사는 마을은 아이들이 같은 자궁에서 친혈육처럼 태어나 자라며, 성인식을 맞이하면 ‘시초지’까지 ‘순례’를 다녀오는 의식을 하는데, 항상 출발 인원에 비해 귀환자가 적음
    • 데이지는 그 사실에 의문을 느끼다가 어느날 어느 귀환자의 절망을 보고 비밀 서재에 들어가 시초지의 기술로 기록된 진실을 확인
      • ‘시초지’인 지구에서, 릴리 다우드나라는 유전병을 가진 재능 넘치는 생명공학자는 자신의 삶을 증오하며 유전성 오류를 제거하고 좋은 특성을 덧붙이는 인간배아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불법 바이오해커 ‘디엔’으로 활동하며,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전 설계된 신인류와 그렇지 못한 인류가 분리된 사회 탄생
      • 40대가 되어 자신의 아이인 올리브를 만든 릴리는 올리브가 자신과 동일한 유전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지만, 자신의 생명을 부정하는 듯해 폐기하지 못하고, 대신 모두가 차별없이 살 수 있는 지구 외부의 장소를 찾아 ‘마을’을 설립
      • 어른이 된 올리브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서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귀환했다 10년 뒤 다시 돌아가 지구인 ‘델피’와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진행하며 생을 마감
      • 즉, 미귀환자들은 ‘시초지’를 방문한 아이들 중 그곳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남아 세상에 맞서기를 택한 자들
    • 데이지는 이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불행한 귀환자와 함께 지구로 떠남
  2. 「스펙트럼」
    • 우주탐사선을 타고 40년 동안 실종되었다 구조된 할머니(희진)가 만난, 다른 행성 생명체들의 삶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발견한 우주탐사선의 조난으로 외계 행성에 홀로 떨어진 희진은 행성의 생명체와 조우함.
    • 인류가 상상한 흉측한 외모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이족 보행을 하고 고유의 언어 체계와 사회적 상호작용이 있으며 무리 생활을 하지만, 팔 갯수가 2개 이상으로 각기 다르고 수명이 3-5년으로 인류에 비해 매우 짧으며 음성 주파수 대역과 인지가능한 색상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인류의 이해 범위를 벗어남.
    • 이들은 영혼은 죽지 않고 육체를 바꿔 다시 세상에 온다고 믿으며, 희진 또한 자신을 구해준 5명의 ‘루이’와 동굴에서 10년을 지냄
    • 루이와 희진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그들의 기록 수단인 색의 패턴 또한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관찰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긍정적인 교류
    • 희진은 지구에서 익숙했던, 프로그램을 활용한 정확한 분석과 숫자로 점철된 추상적인 관념 정립에서 벗어나 직접 그들과의 생활을 체화하며 이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함
    • 루이는 무리의 기록을 담당하며, 이들은 희진도 관찰하고 기록에 남겨, 후계자들도 이 기록을 읽고 이전의 ‘루이’를 계승함
    • 밝히지 않은 사건 이후 극적으로 탈출 머신을 타고 행성이 인류의 수색 범위에 닿지 않을 곳까지 이동한 후 구조되어 지구로 귀환하며, 이후 해당 행성의 정보를 함구한 채 색채언어 분석에 평생을 바침
  3. 「공생가설」
    • 류드밀라 마르코프는 어떤 행성에 대한 그림과 시뮬레이션 미술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소녀로, 모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림에 묘사된 곳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킴
    • 시간이 흐른 후, 우주 망원경의 관측으로 류드밀라가 묘사한 행성은 이미 폭발로 사라진 실존 행성임이 밝혀짐
    • 서울의 어느 연구소에서는 뉴런의 활성화 상태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연구를 진행하여, 동물 임상에서는 훌륭한 결과를 얻었지만, 유독 7세 이하 인간 아기에서는 머릿 속에 여러 명의 양육자가 있는 듯한 결과를 얻음
    • 류드밀라와 연관된 변환 텍스트를 발견한 연구진은 류드밀라의 그림을 아기에서 보여주었고, 가상 양육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
    •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들은 류드밀라 행성의 생존자들이 지구에서 7세 이하 인간의 뉴런에 공생하면서 이타심 등의 감정을 전수하고 유년기 기억과 함께 떠난다는 가설을 정립하여 발표
    • 류드밀라의 연작 ‘나를 떠나지 마세요’는 행성 생존자들의 존재를 인지한 소녀가 그들에게 자신을 떠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밝혀짐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안나는 과학자로, 워프항법으로 우주를 탐사하던 시절 요구되는 기술이었던 딥프리징의 완성을 위해 안티프리저 용액을 연구했다. 그녀의 가족은 먼저 자원이 풍부한 슬렌포니아 행성계(3행성)로 출발해서 기다리기로 했으나, 연구가 마무리될 시점에 웜홀 통로를 이용한 우주 탐사가 시작되면서 우주 연방에서는 웜홀이 없는 행성행 우주선 항로를 폐쇄하여, 가족과 영원히 이별한다. 안나는 딥프리징 기술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100년 이상의 시간을 기약없는 슬렌포니아행 우주선 출발을 기다리며 보냈고, 마지막으로 연방 직원이 우주선 역사 폐쇄를 위해 블랙박스를 챙기러 간 사이 그녀의 우주 셔틀을 타고 홀로 출발한다.
  5. 「감정의 물성」
    • 정하는 잡지 편집자로, 강보현과는 비혼 의사를 존중하여 10년째 만나고 연인으로써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정작 강보현은 그녀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가하는 결혼 압박으로 정신적인 부침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사회적으로 생활용품을 판매하던 회사에서 출시한 ‘이모셔널 솔리드’ 제품이 대히트를 친다. 이모셔널 솔리드는 작은 돌에 감정의 이름-우울체, 침착체, 증오체 등-을 붙여 실제 그 감정을 만지면서 느낀다는 설정으로, 일반 생활용품에 소량의 효능 물질-실제로는 향정신성 약물과 유사한 새로운 종류의 화합물-을 주입한 제품이다. 중추 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만 매우 희석된 양이라 크게 유해하지 않으나, 실사용자들은 실제로 해당 감정 라인의 감정을 느꼈다는 후기들을 쏟아내면서 정하가 이 현상이 플라시보인지 집단 환각인지, 또 판매 물량에 비해 실 사용량이 적다고 해도 왜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 라인을 소비하려 하는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한다. 연인인 강보현도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우울체 라인을 구매하여 모으고 있는 것을 본 정하는 감정의 물성이나 소유가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음에 초점을 맞추며 보현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보현은 자신을 둘러싼 무형의 고통에 짓눌려 스스로 붕 떠버린 채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감각과 감정을 직접 물체로 감각하고 느낌으로써 고통을 완화하길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6. 「관내분실」
    • 사후 뇌를 스캔하여 도서관에 ‘사후 마인드 업로딩’함으로써 생전 고인을 추모하고 가상으로 소통하는 시대. 송지민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모성이 생기지 않는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며, 산후 우울증을 앓다 세상을 떠난 엄마 김은하의 마인드에 접속하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한다. 그러나 유족인 아버지의 요청으로 고유 인덱스가 삭제되어 마인드가 존재하지만 찾을 수 없는 ‘관내분실’ 상황이 발생하고, 새로 개발 중인 마인드 검색 기술을 사용해서 다시 찾아보기 위해 아빠의 집에서 엄마의 유품을 찾아보다 부모가 되기 이전 ‘김은하’라는 존재가 남긴 책의 표지 디자인을 보며 자기 자신으로 고유하게 남을 수 있는 것이 없어 세계에서 고립되고 분실된 김은하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비록 그것이 관계와 애정을 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용서는 아닐지라도, 마지막 남은 ‘엄마’로써 자식들에게 행했던 집착과 통제 강박을 이해하게 된다.
  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 화성 근처에서 우주 저편과 연결된 ‘터널’의 존재가 발견되고, 인류는 터널의 중력 가속도와 압력을 버텨낼 수 있도록 사람의 신체를 개조하여 터널을 통과하는 사이보그 그라인딩(판트로피)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최초 프로젝트 참여자 3인 중 한 명인 최재경은 인공지능 스택마인드의 선택을 받아 시술 및 우주비행사로서의 훈련을 거쳤으며, 각종 미디어와 행사에 노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우주 영웅으로 여겨졌고, 한때 같은 집에서 살던 가윤의 우주 영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터널을 통과하기도 전에 캡슐 폭파 사고로 비극을 맞았으며, 재경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이 흘러 가윤이 이 프로젝트의 우주인 후보로 선발되면서 사실은 재경이 출발 전날 바다에 뛰어들어 실종되었으며, 우주항공국에서 재경의 부재를 은폐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몇차례의 시술과 심해 훈련을 거치면서, 재경이 우주보다는 개조된 신체에 관심이 많았으며 심해에서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한다. 가윤은 최초의 사이보그 심해 탐험가가 된 자신의 우주 영웅과 달리 끝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터널을 통과한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어 꿈을 이룬다.

단어 정리

  1.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
    • 1957년 프랜시스 크릭이 발표한 개념
    • 유전 정보의 방향이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전달된다는 원리 (역방향은 성립하지 않음)
  2. 광자(光子, photon)
    • 빛(전자기)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가지는데, 이때 입자성을 가리기는 명칭 (파동성은 전자기파)
    •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입자이기 때문에 전자기파인 빛의 양자(Quantum) = 광량자
    • 질량을 가지지 않으며, 진공 중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전자와 같은 다른 입자들과 상호 작용 가능
  3. 단분자 (추적) 이미징 기술 (Single molecule tracking Imaging)
    • 노이즈 비율이 적은 전반사 현미경과 형광 처리한 분자를 관찰할 수 있는 형광 현미경을 이용해 생체분자의 움직임을 나노미터 단위에서 추적하는 기법
    • ex) 유전자 정보 오류 복구 메커니즘
  4.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 진핵생물(Eukaryota, 세포 구조가 핵과 세포 소기관으로 구성된 진핵세포로 이루어진 생물 -> 인간 포함)의 세포 안에서 세포 호흡을 담당하는 세포 소기관
    • 생명 활동에 필요한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를 합성하는, 즉 세포 호흡을 담당하여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소기관
    • 세포공생진화설(endosysbiosis), 공생설
      • 대부분의 다른 소기관들과 달리 자체적인 DNA와 박테리아의 리보솜을 가지고 있고 세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분열함으로써 증식
      • 엽록체와 마찬가지로 박테리아의 세포막 구조와 유사한 이중막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특이성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chloroplast)의 기원은 별개의 생물이었다는 타당성 높은 학계 주장
  5. 냉동수면(Cryonics, Cryopreservation, Cryogenic Sleep)
    • 사람의 시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냉동해 보관하다가 기술이 발전된 미래에 소생시키는 방법
    • 무언가를 손상이나 부패 없이 보존하려 할 때 얼리면 보존성이 높아지는 효과에서 착안
    • 불치병 치료나 생명 연장, 그리고 먼 우주 탐사를 위한 승무원 노화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
    • 물은 얼음이 되면 부피가 오히려 증가하고 뾰족한 결정을 형성하는 특성이 있는데, 인체의 70%도 수분이라 냉동 과정에서 세포 조직 손상 발생
    • 현재 냉동인간을 만들때는 수분을 대부분 제거하고 다른 액체를 주입하지만, 세포 조직 손상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 액체는 치명적인 독성 물질
  6. 안티프리저
    • 동결 방지기
  7. 워프 항법(warp drive, space warp)
    • 시공간을 일그러뜨려 4차원으로 두점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킴으로써, 광속보다도 빨리 원거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
  8. 워프 버블(warp bubble)
    • 시공간 왜곡으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하는 아공간 버블
    • 시공 연속체를 왜곡하며 우주선을 추진시키기 위해 물리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의 출현 현상
  9. 액시온 입자(axion)
    • 우주에 존재하지만 중력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전혀 관측되지 않는 미증유의 물질인 암흑 물질(dark matter) 중 하나
    • 미지의 질량을 가지며, 특정 질량 범위 내에서 강력한 암흑 물질의 후보
  10. 웜홀(wormhole)
    • 우주 공간에서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연결하는 가상의 통로 개념
    • 벌레(worm)가 사과에 파놓은 구멍을 통과하면 더 빠르게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는 비유에서 유래
  11. 우주 데브리(space debris)
    • 우주에 떠다니는 쓰레기의 총칭
  12. 시냅스(Synapse)
    • 주로 뇌와 척수에 외치하여 뉴런이라는 신경 세포들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 지점

글귀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행복할 거야.
p.54,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데이지의 편지글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p.96, 「스펙트럼」, 루이의 희진 관찰 일기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 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ㆍㆍㆍ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ㆍㆍㆍ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ㆍㆍㆍ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p.180-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안나가 직원에게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ㆍㆍㆍ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나는 허공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 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ㆍㆍㆍ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p.216-217, 「감정의 물성」, 보현이 정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사는 이유


지민과 엄마는 작은 서재에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가상의 공간이다. 책과 노트, 벽을 채운 그림들, 은하가 지민의 엄마이기 전에 사랑했던 것들,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것들로 채워진 공간. 지민은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자신과 유민의 사진을 보았다.
ㆍㆍㆍ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민은 한 발짝 다가섰다.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던 은하가 마침내 지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은 알 수 있었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270-271, 「관내분실」, 지민이 은하에게


별들과 뿌옇게 흩어진 성운이 보였다. 더 많은 별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수도 없이 보았던 저쪽 우주와 별다를 바도 없었다.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p.318-319,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최초의 터널 통과 우주 비행사가 된 가윤


후기


과학기술과 상관없이 우리의 고민은 비슷하다: 나와 다른 너, 우리와 다른 너희에 대하여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게 되었는데, 과학적 개념을 인간사에 대입하여 SF 미래 세계관을 구성하고, 그 사회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사랑, 외로움, 고향..)를 다루고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이 유전적 결함이라는 차별 소재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릴리는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 공간을 찾아 딸을 데리고 떠났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정작 올리브는 마을에 ‘시초지 순례’라는 성인식 의식을 만들어 차별을 직접 대면하게 유도하고, 스스로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사람을 사랑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며 생을 보낸다. 도망친 낙원에서 사람들은 서로 차별하지 않지만, 오히려 서로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기에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일도 없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이 아니고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며 사회 문제의 단골 소재가 되지만, 우리는 서로가 다르기에 거부하거나, 호기심을 가지고 끌리며 종국에 사랑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애증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올리브와 미귀환자들이 지구에 남은 것은 나와 다른 너를 인식하고 사랑하는 것에 가치를 느끼고, 신인류가 외곽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거부감을 낮추어 서로 사랑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이 좀 더 사랑받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스펙트럼」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생명체 사이의 교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희진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수치적 분석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지만, 불시착한 외계 행성에서는 의도치 않게 외계인 부락에서 생활을 직접 함께 하며 감정 교류를 통해 그들의 문화와, 사회 구조와, 종족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 또한 호의를 가지고 희진을 관찰하며 서로 존재로써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희진은 끝까지 행성의 존재를 함구함으로써 지구의 인류와의 조우 가능성을 차단해버린다. 마치 지구인은 그들과 교류하기에는 위험하다는 듯이, 자격이 없다는 듯이. 대항해시대와 중상주의로 포장된 17세기 이후 유럽인들의 이민족 정책을 떠올렸으리라. 인디언들은 학살당해 보호구역으로 몰렸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식민지로 전락했던. 서로 다름에 대해 부수고 착취했으며, 서로의 긍정적 관계 발전을 위한 이해나 감정 교류없이 폭력으로 점철된 일방적 관계는 그자체로 차별이고 폭력이다. 비단 외계인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너와 만나고 관계를 맺는 방식 또한 동일하다.

「공생가설」은 멸망한 류드밀라 행성의 생존자들이 유아기의 인간의 정신에서 공생한다는 설정을 빌어, 우리 또한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주었다. 어떠한 존재든 단일로는 존재하지 않고, 다른 존재와 공생하거나 적어도 긍/부정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또한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어떠한 실체의 작은 공생 기관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인간은 그 자체로 단일하고 유일하며 위대한 생명이라는 아집에서 벗어나 과학의 발전에도 여전히 미지의 생명들으로 넘쳐나는 이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생명들의 존재와 이들과의 영향관계를 관찰하고 탐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과학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새로운 종류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주 항법의 발전으로 오히려 이산가족이 된 안나는 반복되는 딥프리징 기술로 사고 능력이 퇴화해가는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끝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하고자 하는 열망을 유지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는 이전과는 또다른 단절과 문제에 직면할 것이 자명하고, 이때 사회와 정부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가능한 부작용들에 대해 함께 고려하고 대응해나가야 의무가 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경제성과 효율성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결국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행복해지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물성」에서는 무형의 감정을 사물화하여 그 감정을 소유하고 감각한다는 인상을 ‘이모셔널 솔리드’ 제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실체화하여 통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그려낸다. ‘증오체’를 구매한 사람들의 폭력 사태나, ‘우울체’를 구매한 강보현의 우울 상태나 본질적으로 현재 자신이 압도당해있는 미지의 감정을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감각함으로써 이름붙이고 명확하게 인식하여 정확한 감정을 깨닫고 난 결과물이다. 이들은 부정적인 감정 라인을 구매하면서 현실의 감정도 손 아래에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어 현실의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원했을 것이나, 실제로는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고 발산시켜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분명 해결의 시작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해소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일이란 이토록 다루기 어렵고 이성대로 되지 않은 문제이므로 사람들은 다시 감정을 통제하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부정적 감정 라인을 재구매하는 루틴을 반복했을 것이다. 과학은 보조할 뿐, 결과는 인간의 선택이며 의지다.

「관내분실」에서는 서로 반목하며 이해하지 못했던 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번에는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과학 기술을 활용해 딸이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어나가는 여정을 그렸다. 임신이 주된 원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여자는 대체로 출산 이후 사회적으로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정체성만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산후우울증은 그러한 사회적 낙인에 대한 정신적 거부감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장기화되어 하나 남은 정체성에만 몰두해 자녀들과의 건강한 감정 교류보다 집착하고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누군가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김은하’라는 독립된 인간으로써의 정체성을 다시 되찾고 이해해 주며 사회 속에서 다시 실현하기를 바랐던 내면을 딸은 마침내 잘못된 관계를 만들어나간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딸은 이제 사회적으로 어머니에게 흔히 기대하는, ‘아이를 향한 무조건적 모정’에만 매달리지 않을 것이고, 엄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아이만 바라보고 목매달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써 사랑하는 이들과 건강하게 관계를 맺고, 한편으로 스스로의 삶 또한 유지해나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모습 또한 변해야 한다. 자식은 세상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앞날을 부모가 미리 설계하고 행복하기만 한 비단 꽃길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내가 그랬듯이 결국 그들도 언젠가는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괴로워하고 방황하는 순간이 존재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써의 권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같은 과학 기술(사이보그 그라운딩)을 적용해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에 대해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은 자유와 해방을, 한 사람은 더 높은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가능성 입증을 위해 같은 프로젝트에서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 특별히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재경과 가윤은 심지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며 가족같은 감정 교류와 친분을 유지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었고, 다른 가치관을 지녔으며, 같은 기술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은 단지 사람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 기술은 앞으로도 더 발전하겠지만, 결국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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