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또다른 싯타르타, 자기자신과 세계를 통합 인식하는 여정
더스토리의 『(헤르만 헤세 저, 박진권 역)』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본 정보
저자
** 헤르만 헤세 (Hermann Karl Hesse, 1877.7.2 - 1962.8.9) **
독일 남부에서 선교사 아버지와 인도학자의 딸인 모친의 아들로 출생
1891년(14세), 신학교에 진학 후, 시인을 꿈꾸며 자퇴 1892년(15세), 자살 기도 및 신경쇠약에 의한 정신병원 입원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 출간 및 마리아 릴케 인정 획득 1901년 & 1903년, 이탈리아 여행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 출간 및 결혼 1911년, 인도 여행
주요 사적
『수레바퀴 아래서』(190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유리알 유희』(1943)
내용
어느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가 해탈을 위해 사마나가 되어 집을 떠나 세상을 겪으며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세계와의 정신적 합일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린 내용
글귀
그가 보기에 모든 것이 가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모든 것이 악취를, 거짓의 악취를 풍겼다. 모든 것은 의미 있고 행복하며 아름다운 것처럼 가장한 듯 보였다. 그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썩어 없어질 것이었다. 세상은 쓰고, 인생은 번뇌였다. p.26, 사마나가 된 시기의 시선
실로 속세는 병들었고, 인생은 고해였다. p.36, 사마나가 된지 3년째의 시선
저는 한순간도 세존께서 붓다라는 사실을, 세존께서 수천의 브라만들과 브라만의 아들들이 도달하려고 애쓰는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세존의 독자적인 구도를 통해 죽음으로부터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당신의 독자적인 길에서, 사고를 통해서, 몰입 수행을 통해서, 인식을 통해서, 깨달음을 통해서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그것은 가르침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오, 세존이시여! 저는 어느 누구도 가르침을 통해서 해탈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 지존이시여! 지존께서는 깨달음의 순간에 일어난 일을 언어로 그리고 가르침을 통해서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못하실 것이고, 말해 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고, 악한 것을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토록 명백하고, 그토록 고귀한 가르침에 한 가지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세존께서 몸소 체험하신 비밀, 수십만 명 가운데 홀로 경험하신 그 비밀이 내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가르침을 들었을 때 생각하고 인식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편력을 계쏙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을 찾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가르침이 없다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모든 가르침과 모든 스승을 떠나기 위해서, 그리고 저 혼자만의 목표에 도달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차라리 죽기 위해서 떠나는 것입니다. p.53-54, 고타마 싯다르타와의 대화, 가르침으로 전할 수 없는 것
그들 모두가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판단을 내릴 권한이 없습니다. 오로지 저를 위해서, 저만을 위해서 판단해야만 하고, 선택해야만 하고, 거절해야만 합니다. p.54, 고타마 싯다르타와의 대화, 판단은 자산만을 위해 스스로 하는 것
싯다르타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자신을 완전히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기듯이 그는 감정의 바닥까지, 원인이 깃들어 있는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원인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곧 사고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감정은 인식으로 변하며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되어 그 속에 내재한 것을 발산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57, 기원정사를 떠나는 길, 감정을 인식하여 사고하는 법
그래, 그 길은 대단히 좋았고, 내 가슴속의 그 새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길은 대체 어떤 길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리도 많은 어리석은 짓, 아주 많은 악덕, 아주 많은 오류, 아주 많은 혐오와 환멸과 비참을 통과해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일이었다. 내 마음은 그것에 대해 긍정의 말을 하고 있었고, 내 두 눈은 그것에 대해 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절망을 체험해야만 했다. 나는 자비를 체험하기 위해서, 다시 옴을 듣기 위해서, 다시 제대로 잠을 자기 위해서, 제대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 모든 생각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을 할 때까지, 자살할 생각을 품을 때까지 처절하게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아트만을 다시 내 안에서 발견하기 위해서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나는 다시 살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길은 또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그것은, 그 길은 멍청하다. 그 길은 꾸불꾸불하고 어쩌면 빙빙 순환하는지도 모른다. 그 길이 제멋대로 나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p.132-133, 카말라에게서 떠나는 길, 구부러졌지만 가장 바른 길
싯다르타는 강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무엇보다도 강으로부터 고요한 마음으로, 영혼을 열고서 기다리는 마음으로, 격정을 일으키거나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의견을 말하지 않고서 경청하는 법과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p.147, 강가에서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 강에서 배운 것들
그 아이도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지요. 하지만 우리, 당신과 내가 그 아이가 무엇을 위해, 어떤 길로, 어떤 행위로, 어떤 고통으로 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인지 대체 알기나 하는 걸까요? 그 아이의 번뇌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 아이의 마음은 거만하고 강퍅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많은 번뇌를 겪고, 많이 방황하고, 부당한 짓을 많이 행하고, 많은 죄업을 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은 아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아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들을 때리는 것은 아닙니까? 아들을 벌주는 것은 아닙니까? ㆍㆍㆍ 당신은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때리지 않고,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부드러움이 단단함보다도 더 강하다는 것을, 물이 바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사랑이 폭력보다도 더 강하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ㆍㆍㆍ 하지만 당신이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착각 아닐까요? 당신은 그 아이를 사랑의 끈으로 묶어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날마다 그 아이에게 창피를 주지 않나요? 그리고 당신은 관대함과 인내심으로 그 아이를 더 힘들게 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 아이를, 교만하고 버릇이 잘못 든 소년에게, 밥은 별미로 생각하고 바나나로 먹고사는 두 노인과 함께 오두막에서 살라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 아이의 생각은 이미 낡고 침체된 두 노인의 마음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에도 그 아이는 강요당하거나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p.163-164,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자식에게 주어진 길
싯다르타는 이제 예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덜 현명하고, 덜 오만한 대신에, 더 따뜻하고, 더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 깊게 바라보았다. ㆍㆍㆍ 그는 그들을 이해했다. 그는 사고와 분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충동과 욕망에 의해 이끌리는 그들의 삶을 이해했고, 그 삶을 함께 나누었다. 자신이 그들과 똑같이 느꼈다. 비록 그가 거의 완성에 다다랐고, 최후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엑에는 그러한 소인배들이 형제처럼 여겨졌고, 그들의 허영심, 탐욕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웃음거리가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것, 사랑스럽고 심지어 존경할 만한 것으로 여겨졌따.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 외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어리석고 맹목적인 자부심, 보석을 갖고자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 싶어 하는 젊고 허영심 많은 여자의 맹목적이고도 거친 본능, 그 모든 충동, 그 모든 유치한 짓들, 단순하고 어리석지만 무섭도록 강렬하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욕구와 충동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고,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것을 성취하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것에 시달리고, 무한한 것을 견뎌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런 것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삶 속에서, 행위 속에서 생명을, 생동하는 것을, 불멸하는 것을, 브라만을 보았다. p.176-177, 뱃사공 싯다르타의 시선
싯다르타는 들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귀 기울이는 자가 되었고, 완전히 경청하는 데 몰두했고,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완전히 빨아들였다. 그는 이제 귀 기울여 듣는 일을 끝까지 다 배웠다고 느꼈다. 이미 그는 그 모든 것을, 강물 속에 있는 수많은 소리를 자주 들어 왔으나, 오늘은 다르게 울려 왔다. 어느덧 그는 그 많은 소리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즐거운 소리를 우는 소리와 구분할 수 없었고, 아이들의 소리를 어른들의 소리와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소리는 모두 한데 모여 있었다. 그리움의 탄식과 깨닫는 자의 웃음소리, 분노의 외침과 죽어 가는 자의 신음 소리,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이씨었고, 모든 것이 서로 뒤얽혔고, 결합하여 수천 겹으로 엉켜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모여서, 일체의 소리, 일체의 목표,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고통,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이 세상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사건의 강을 이루었고, 삶의 음악을 이루었다. 싯다르타가 주의하여 이 강에, 수천 가지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면, 만약 그가 고통이나 웃음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만약 그가 자기 영혼을 그 어떤 소리에 묶어 자아와 더불어 그 소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든 소리를 듣고, 전체적인 것,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마디의 말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옴’, 완성이었다. p.185-186, 모든 감정이 녹여든 하나의 소리, 옴
그 눈이 단지 구하는 것만 찾느라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기 쉽습니다. 항상 구하는 대상만을 생각하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구한다 함은 목표를 가지는 것입니다. 찾아낸다 함은 자유로운 상태, 열린 상태, 아무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스님이시여, 당신은 구도자인 것 같습니다.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p.190, 목표를 좇는 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그럴 수가 없네. 지혜를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고, 지니고 다닐 수 있고, 기적으로 행할 수 있지만,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미 청년이었을 때 이따금 예감했던 것이고, 나를 스승들로부터 떠나게 한 것이라네. p.193, 고빈다와의 대화, 지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고빈다, 자네는 그 사상을 농담이나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내 최고의 사상이라네. 그 사상이란 ‘모든 진리의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다’라는 것이네. 말하자면 이렇다네. 진리는 오직 일면적일 때만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고, 말로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이네. 사상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고,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인 것이네. 모든 것은 일면적이고, 모두 다 반쪽일 뿐이며, 모두 다 전체성, 원,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네. 그래서 세존 고타마께서 가르치시면서 세상에 대해 말씀하실 때, 세상을 윤회와 열반, 미혹과 진리, 번뇌와 해탈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네.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길이 없네. 하지만 세계 자체, 우리를 에워싸고 있고, 우리 마음에 내재하고 있는 존재 자체는 결코 일면적이지 않다네.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완전한 윤회이거나 완전한 열반이 결코 아니며, 한 인간이 완전히 신성하거나 완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네. 고빈다, 나는 그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세계와 영원 사이, 번뇌와 행복 사이, 선과 악 사이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간격 또한 착각이라네. ㆍㆍㆍ 나라는 사람은 죄인이고 자네라는 사람도 죄인이네. 하지만 그 죄인이 언젠가는 브라마가 될 것이고, 그 죄인이 언젠가는 열반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붓다가 될 것이네. 그런데 보게, 이 ‘언젠가’라는 말은 착각이고, 다만 비유일 뿐이네! 죄인은 불성의 경지로 가는 과정에 있지 않네. 죄인은 발전해 가는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네. 비록 우리의 사고가 만사를 다르게 상상할 줄 모르더라도 말이네. 그래, 그 죄인 속에는 지금, 그리고 오늘, 이미 미래의 붓다가 존재하고 있네. 그의 미래는 모두 거기 있네. ㆍㆍㆍ 이 세상은 불완전하지 않고, 또는 완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지도 않다네. 아니,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하네. 모든 죄는 이미 그 자체 안에 자비를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아이는 이미 자기 안에 노인을, 모든 젖먹이는 죽음을, 모든 죽어 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지니고 있네. ㆍㆍㆍ 도둑과 노름꾼 안에도 붓다가 머물러 있고, 브라만 안에도 도둑이 머물러 있는 법이네. ㆍㆍㆍ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브라만이라네. ㆍㆍㆍ 나는 반항을 단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세상을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그 어떤 것과, 내가 잘못 상상했던 세상과 비교하지 않기 위하여, 내가 고안해 낸 종류의 완전성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꺼이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내가 죄악을 몹시도 필요로 했따는 것을, 내가 쾌락을 필요로 했고, 재물에 대한 탐욕, 허영심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굴욕적인 절망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나의 육신으로 체험하게 되었고, 나의 영혼으로 체험하게 되었네. p.193-196, 고빈다와의 대화, 세상이라는 진리는 다면적이며, 그 자체로 완성이다
말이란 신비로운 의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라네. 뭔가를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언제나 즉시 조금 달라지고, 변조되고, 약간은 어리석게 되기 마련이네. ㆍㆍㆍ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이고 지혜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린다는 것에도 나는 동의하고 있네. ㆍㆍㆍ 하지만 나는 말을 사랑할 수가 없네. 그렇게 때문에 가르침이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네. 그것은 아무런 단단함도 없고, 아무런 부드러움, 아무런 색깔, 아무런 가장자리, 아무런 냄새, 아무런 맛도 지니고 있지 않네. 그것은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게 그대를 방해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르네. 어쩌면 그것은 수많은 말일지도 모르네. 왜냐하면 해탈과 덕도, 윤회와 열반도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네, 고빈다. 열반이라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네. 단지 열반이라는 낱말만이 있을 뿐이네. p.198, 고빈다와의 대화, 말은 불완전한 전달수단
사랑이야말로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네.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일 것이네. 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의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 그리고 외경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는 것만이 나에게는 비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이네. p.200, 고빈다와의 대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
우리는 의견의 밀림 한가운데서 말 때문에 싸우고 있네. 사랑에 관한 내 말이 모순된다는 것을, 고타마께서 하신 말씀과 분명 모순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말을 그토록 불신하는 것이라네. 왜냐하면 그런 모순이 착각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네. 내가 고타마와 같은 의견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 그분께서 어떻게 사랑을 모르시겠나?그분께서는 무릇 인간 존재라는 것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것을 인식하셨네. 그런데 그럼에도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그분은 길고도 고생으로 가득한 한평생을 오로지 인간 중생을 돕고 가르치는 데 사용하셨네! 그분에 대해서, 자네의 위대한 스승에 대해 생각할 때도 나는 말보다 사물을 더 좋아하네. 그분의 행위와 삶을 그분의 가르침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분의 손짓 하나하나가 그분의 의견보다도 더 중요하다네. 나는 그분의 설법, 그분의 사상에서 그분의 위대함을 깨닫는 게 아니라, 오직 행위와 삶 속에서 그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네. p.201-202, 고빈다와의 대화, 불완전한 말보다 행동으로 이해하라
내용 정리
개인의 자아와 외부 세계와의 합일
실로 세상은 아름답고, 개개인의 삶은 넘치는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