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한 예술가의 삶의 여정

문학동네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저, 안인희 역)』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기본 정보
    1. 저자
    2. 주요 사적
    3. 내용
  2. 글귀
    1. 내용 정리
      1.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두 유형, 사색가와 예술가

기본 정보


저자

** 헤르만 헤세 (Hermann Karl Hesse, 1877.7.2 - 1962.8.9) **

독일 남부에서 선교사 아버지와 인도학자의 딸인 모친의 아들로 출생
1891년(14세), 신학교에 진학 후, 시인을 꿈꾸며 자퇴 1892년(15세), 자살 기도 및 신경쇠약에 의한 정신병원 입원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 출간 및 마리아 릴케 인정 획득 1901년 & 1903년, 이탈리아 여행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 출간 및 결혼 1911년, 인도 여행

주요 사적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유리알 유희』(1943)

내용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만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우정을 쌓으며 서로의 길을 확인하고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져 각자의 삶을 걷고,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되찾은 골드문트는 세상을 떠돌며 자연과 여성과의 사랑,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흑사병이 초래한 죽음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내면의 심상을 조각하여 이를 표출한다. 몇십년이 흘러 다시 재회한 둘은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수도원장과 조각가로써 사색과 예술로 각자가 이해하는 세계의 진리를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지기가 된다.

글귀


우리의 과제는 서로 가까워지는 게 아니다. 태양과 달 혹은 바다와 육지가 서로 가까워지지 않듯.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둘은 태양과 달이고 바다와 육지야. 우리의 목표는 하나로 섞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고, 상대방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걸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서롤 반대되면서도 보완된다는 걸 말이지. p.54-55,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멀리 있으되 서로 존중하는 우정


“내 생각에는,” 그가 말했다. “꽃잎 하나 또는 길가의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도서관의 모든 책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철자나 말들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해. 가끔 어떤 그리스 철자를 쓰다가, 그러니까 세타나 오메가를 쓰다가 펜을 조금만 돌리면 글자에 꼬리가 붙으면서 물고기가 되어 순식간에 ㅅ세상의 모든 시내와 강, 서늘함과 축축함, 호메로스의 대양과 베드로가 돌아다니던 강들을 연상시키거든. 또 철자는 새가 되어 꼬리를 만들고 깃털을 곤두세우고, 몸을 부풀려 웃고 날아가지. -그런데 나르치스, 당신은 그런 철자들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지? 하지만 내 상각에 하느님은 그런 철자들로 세상을 쓴 거야.”
“나도 그런 걸 중요하게 여겨.” 나르치스가 슬프게 말했다. “그건 온갖 악마를 불러낼 수 있는 마법의 철자야. 물론 학문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지만. 정신은 견고한 것, 형태를 갖춘 것을 사랑하고, 자신이 쓰는 기호들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 정신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을 좋아해. 정신은 오메가가 뱀이나 새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해. 정신은 자연에서 살지 못하고, 자연에 반하며 자연의 대척자 노릇을 할 뿐이야.”
p.78-79,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대화, 예술가와 사색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하지만 그 자신은, 골드문트는 이십 년 뒤 어떤 모습일까? 아, 이 모든 것은 알 길이 없고, 설사 아름답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슬펐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들은 살아서 땅 위를 걸어다니거나 아니면 말을 타고 숲들을 통과한다, 그리고 많은 것이 요구하고 약속하고 그리움을 일깨우듯 우리를 바라본다. 저녁 하늘의 별 하나, 푸른 초롱꽃, 갈대가 자란 초록빛 호수, 인간의 눈이나 소의 눈들이. 그리고 때때로 한 번도 보지 못했찌만 오랫동안 갈망해온 어떤 일이, 모든 것을 가린 베일이 벗겨지는 일 같은 것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지나갈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비밀스러운 마법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침내 자기는 늙어서 안젤름 신부처럼 간교하게 또는 다니엘 원장처럼 지혜롭게 보이겠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여전히 기다리며 귀기울이겠지. p.91, 골드문트, 인간의 모든 생을 걸어도 알 수 없는 것들


그는 오로지 준비가 되었을 때만 헌신적이고 경건한 태도로 작업에 임했다. 이 시간 동안은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았고, 삶의 쾌락도 덧없음도 알지 못했다. 그 옜날 친구에게 마음을 바치던, 그의 안내를 기쁘게 받아들이던 시절의 경외심이, 가볍고 순수하게 조율된 감정이 마음에 되살아나곤 했다. 작업장에 서서 자기 의지에 따라 형상을 만드는 것은 골드문트가 아니었다. 그 일을 한 것은 오히려 작업 대상인 나르치스였다. 그가 예술가의 손길을 이용해 삶의 덧없음과 가변성에서 벗어나 자기 본질의 순수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굴드문트는 진짜 예술품은 이런 식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고 때때로 전율했다. ㆍㆍㆍ 아, 인간의 손에서 오로지 그런 예술품들만, 의지나 허영심에 오염되지 않은 거룩하고 필연적인 모습들만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그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은 또다른 형상들도 만들 수 있었따. 예술 애호가들을 기쁘게 하고, 교회와 회의실을 장식하기 위해 장인의 솜씨로 만든 예쁘장하고 매혹적인 작품들-이것들 역시 아름답기는 했지만 거룩하지는 않았고, 진짜 영혼을 담고 있지도 않았다. 니클라우스뿐 아니라 다른 마이스터들이 만든 작품들 중에도 그런 것이 상당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우아한 발상과 꼼꼼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한낱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부끄럽고 슬픈 일이었지만, 골드문트 역시 자신의 마음과 손길을 통해서도 예술가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느끼는 즐거움과 허영심에서, 그리고 장난으로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을 알았다. p.203-204, 사도 요한상을 조각하는 골드문트, 영혼이 담긴, 진실된 예술품의 정의


그에게는 사랑과 쾌감이 삶을 진짜로 따뜻하게 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것처럼 보였다. 명예욕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주교나 거지나 그에게는 똑같았다. 돈벌이와 재산도 그의 마음을 붙잡지 못했다. 그는 그런 것들을 경멸했고, 그런 것들을 위해 조금도 희생하지 않았으며, 한동안 넉넉하게 벌어들인 돈을 아무렇게나 써버렸다. 여자들의 사랑과 성적 유희, 이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자주 슬픔과 권태에 빠지는 그의 성향의 핵심도 쾌감의 순간성, 그 덧없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사라의 쾌감, 짧고도 애타는 불타오름, 그리고 빠른 소멸-이것이 그에게는 모든 체험의 헥심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에게는 삶의 온갖 환희와 모든 고통을 나타내는 이미지였다. 그는 사랑에 헌신하듯 애수와 덧없음의 전율에도 똑같이 자신을 내맡길 수 있었다. 이런 우울한 마음 또한 사랑이고 쾌감이었다. 사랑의 기쁨이 가장 행복한 최고 긴장의 순간에 바로 다음번 호흡과 더불어 사라지 고 도로 죽어버릴 것이 확실한 만큼이나, 가장 깊은 고독과 우수도 갑작스럽게 그리움과 삶의 밝은 측면을 향한 새로운 헌신에 삼켜질 것이 확실했다. 죽음과 쾌감은 하나였다. 사랑 또는 쾌감을 삶의 어머니라 한다면 무덤과 부패 또한 삶의 어머니라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에바, 행복의 원천이자 죽음의 원천이었따. 그녀는 영원히 낳고 영원히 죽였으며, 그녀 안에서 사랑과 잔인함은 하나였다. 그가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속에 오래 간직할수록, 그 모습은 그에게 비유이자 거룩한 상징이 되어갔다. p.207-208, 조각 도제 생활 중인 골드문트, 골드문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심상


골드문트는 신비로운 감각을 통해 자신의 예술가 특성에 숨은 비밀도 짐작했다. 그는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따금씩 사나운 증오심을 느꼈는데, 굳이 생각히지 않고 느낌만으로도 많은 비밀을 짐작했다. 예술은 아버지 세계와 어머니 세계의 결합, 정신과 피의 결합이었다. 예술은 가장 감각적인 것에서 시작해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이어지거나, 순수한 이념의 세계에서 시작해 피가 흐르는 육신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잘 빚어낸 협잡꾼의 작품이 아니고 영원한 비밀로 채워진 진정 고귀한 모든 예술품, 예를 들어 스승이 만든 성모상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정한 예술품은 모두 미소 띤 위험한 이중 얼굴, 남자와 여자의 요소를 하께 지닌, 충동적 요소와 순수한 정신성을 나란히 지닌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에바-어머니야말로 이런 이중성을 가장 많이 드러낼 것이다.
골드문트가 지닌 가장 깊은 모순들의 화해 가능성, 또는 그의 본성의 분열은 나타내는, 거듭 새로워지는 뛰어난 비유의 가능성은 예술과 예술가 본질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예술은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었다. 결코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매우 많은 비용과 희생을 요구했다. 골드문트는 예술을 위해 삼 년이 넘게 자유를 희생했다. 자유는 그가 사랑의 쾌감 다음으로 잘 아는 최고의 것,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는 자유로움, 국경을 넘나들며 떠도는 것, 변덕스러운 방랑생활, 혼자만의 독립적인 생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때때로 노여워하며 작업장과 일을 소홀히 하는 그를 다르사람들은 변덕스럽고 순종할 줄 모르고 독단적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에게 이런 삶은 도저히 견딜수 없을 만큼 괴로운 노예생활이었다. 그가 복종할 상대는 스승도, 장래도, 필수품도 아니었다-오로지 예술 자체였다. 언뜻 보기에 예술은 매우 정신적인 여신이지만, 실은 하찮은 것들을 아주 많이 필요로 했따! 머리 위에는 지붕이 필요했고, 도구, 목재, 점토, 안료, 금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일과 끈기도 요구했다. 그런 예술을 위해 그는 숲의 거친 자유를 버렸고, 광활한 공간에서의 도취, 위험이 제공하는 짜릿한 쾌감, 비참함에서 얻는 자부심 등을 희생했다. 목 졸리며 이 악물로 언제나 새롭게 이런 희생을 감내했다. p.208-209, 조각 도제 생활 중인 골드문트, 골드문트의 예술관과 예술을 위한 그의 희생


그는 언제나 자신을 미워하고 경멸하고 두려워하는, 재산을 소유한 정착민의 원수이자 적이다. 정착민은 이 모든 것을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의 순간성,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시들어간다는 것, 우리 주변의 세계를 가득 채운 가차 없고 차가운 죽음 따위를 말이다.
방랑생활의 천진함, 그것이 어머니 쪽에서 왔다는 것, 그런 생활이 법과 정신에 등을 돌리고 그저 자신을 내맡겨놓은 채 죽음과 은밀히 가까이 지내는 일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골드문트의 영혼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내면에 정신과 의지가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그가 예술가라는 사실이 삶을 풍성하게 하면서도 힘들게 했다. 모든 삶은 분열과 대립을 통해서야 비로소 풍성하게 피어난다. 황홀경을 알지 못한다면 이성과 냉정함이 대체 뭐란 말인가. 죽음이 바로 뒤에 있지 않다면 감각의 쾌락은 대체 무엇이며, 남자와 여자 사이의 영원한 적대감이 없다면 사랑은 대체 뭐란 말인가? p.236, 다시 방랑하는 골드문트, 방랑자:감정과 이성의 양극단을 모두 긍정하는 사람


그는 온전히 어머니 쪽 세계, 충동적인 근원 세계에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꿈꿀 때마다, 또 꽃피고 시드는 골짜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쉴 때마다, 그는 바라봄으로 충만한 예술가였으니, 흘러가버리는 아름다운 삶의 무의미를 정신을 통해 불러내 의미로 바꾸고 싶은 괴로운 갈망에 시달렸다. p.237, 방랑 중인 골드문트, 예술가의 본능은 찰나의 순간을 물질적으로 형상화하여 붙잡는 것


사색가는 논리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표현하려 하지. 하지만 사색가는 우리의 이해력과 그것의 도구인 논리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네-마찬가지로 영리한 예술가 역시 자신의 붓이나 끌이 천사나 성인의 빛나는 본질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그 둘은, 사색가든 예술가든 자기 방식으로 시도하는 거지. 다르게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 인간은 자연이 자신에게 내린 재능으로 자신을 실현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을 행하는 거니까. 그래서 옜날에 자네에게 그토록 자주 말했던 걸세. 사색가나 금욕주의자 흉내를 내지 말고 자네 자신이 되라고, 자신을 실현하라고! p.338,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자신의 재능에 따라 세계의 본질을 표현하라


아리스토텔레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최고의 개념은 완전한 존재지. 완전한 존재는 신이야. 다른 모든 존재는 그냥 절반의 존재, 부분적 존재, 형성중인 존재, 뒤섞인 존재로서 가능성들로 이루어져 있네. 하지만 신은 섞인 게 아니고 하나야, 가능성이 아니고 온전히 현실성이지. 하지만 우리는 스러지는 존재고, 늘 형성중이고 가능성일 뿐, 우리에게 완벽함이란 없고 완전한 존재도 아니지. 우리가 잠재력에서 행동으로, 가능성에서 실현으로 나아가는 곳에서 우리는 참된 존재의 일부가 되고, 완전하고 신적인 것과 한 단계 더 닮아가는 거지. 그게 바로 자신을 실현하는 거야. 그간 자네가 경험한 일들을 통해 이런 과정을 알게 되었을 거야. 자네는 예술가고 이미 몇 가지 조각상을 만들었어. 그런 조각상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러니까 한 인간의 초상이 우연성을 벗어나 순수한 형식의 경지에 이르렀다면-자네는 예술가로서 이 인간의 모습을 실현한 것이라네. p.338,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


나는 자네한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네, 골드문트. 이제야 예술이 무언지 이해하기 시작했어. 전엔 사유나 학문에 비하면 예술을 완전히 진지하게 여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네. 그때는 대강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 인간이란 정신과 물질이 의심스럽게 섞인 존재다, 정신은 영원성에 대한 인식을 열어주지만, 물질은 인간을 아래로 끌어내려 허망한 것에 붙잡아놓는다, 그러니 삶을 고귀하게 만들고 의미를 얻으려면 감각들을 멀리하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이지. 나는 습관적으로 예술을 높이 평가한다고 공언하기는 했으나 실은 교만하게 예술을 내려다보았던 거야. 지금에야 인식에 이르는 길이 아주 다양하다는 것, 정신의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며 어쩌면 가장 좋은 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물론 그것이 나의 길이니 나는 여기 머물러 있을 걸세. 하지만 자네가 정반대의 길, 그러니까 감각들을 통한 길에서 존재의 비밀을 깊이 파악하고, 대부분의 사색가들보다 어쩌면 더욱 생동하는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p.352-353, 정신이나 감각은 인식을 위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용 정리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두 유형, 사색가와 예술가

인간이 사는 세상은 따로 또 함께 도달해가는, 존재를 향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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