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

파이돈

플라톤, 영혼의 불멸, 상기

아카넷의 『파이돈(플라톤 저, 전헌상 역)』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기본 정보
    1. 저자
    2. 사적
    3. 내용
  2. 글귀
    1. 후기
      1. 삶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이에 기반하여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살다간 한 인간에 대한 찬사

기본 정보


저자

플라톤 (BC428/427 or BC 424/423 ~ BC348/347)

아테네 출생, 아리스톤과 페릭티오네의 아들
외가쪽이 솔론의 6대손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고등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의 교육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사적

I.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II. 『크라튈로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정치가』
III. 『파르메니데스』, 『필레보스』, 『향연』, 『파이드로스』
IV. 『알키비아데스 1』
V. 『카르미데스』, 『라케스』, 『뤼시스』
VI. 『에우튀데모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VII. 『대 히피아스』, 『소 히피아스』, 『이온』, 『메넥세노스』
VIII. 『클레이토폰』, 『국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IX. 『미노스』, 『법률』, 『편지들』

내용

소크라테스의 사형 직전에 크리톤, 파이돈 등의 지인과 죽음과 사후 영혼의 형태에 대해 나눈 대화

글귀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크라테스, 어쩌면 당신도 그렇겠지만, 현재의 생에서 그러한 문제들에 관해 확실한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된 것들을 모든 방식으로 따져보지도 않고 모든 측면에서 철저히 탐구하기도 전에 그만두는 건 아주 나약한 인간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다음 중 어떤 하나는 해내야만 하니까요. 사실이 어떠한가를 배우거나, 발견하거나, 혹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인간적인 주장들 중에서는 최선이고 가장 논박하기 어려운 것을 취해서, 마치 뗏목처럼 그것 위에 올라탄 채 삶을 항해하는 일을 감행하거나 말입니다.”
p.86, OCT 85c~d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주게, 잊지 말고.”
p.156, OCT 118a



후기


삶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이에 기반하여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살다간 한 인간에 대한 찬사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후, 탈옥을 권하는 『크리톤』을 거쳐 사형 당일 최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가족과 지인들이 감옥을 방문하여 그의 예정된 죽음을 슬퍼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게, 일견 기꺼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평생 진심으로 전력을 다했던 그는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철학자)는 “육체의 감각을 최대한 멀리하고 추론을 통해 진리를 포착하는 자”이므로, “몸으로부터의 해방”인 죽음은 철학자가 바라는 상태이며, 따라서 신에 대한 불경이 되는 자살이 아닌 죽음을 기꺼워하노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소멸한다면, 진리를 포착하는 인식 행위를 할 수 없게 되는데, 오히려 지혜를 사랑하는 상태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생기므로 죽은 것들(영혼)로부터 살아 있는 것들(육체+영혼)이 생겨나며, 따라서 죽음 이후의 영혼은 육체에서 벗어나 하데스에 존재한다는 영혼불멸설을 말한다. 또한 영혼은『일리아스』에서 서술하듯이 죽음으로써 몸에서 해방된 후 흩어져 날아가지도 않는다. 결합된 것은 해체될 수 있으나, 비결합적인 것은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다르고 같은 식으로 있지 않은 것들-사람, 말, 육체 등-은 가시적이고 사멸하며 여러 모습을 가지며 해체된다. 반면 항상 같고 그 자체인 것들-아름다움, 영혼 등-은 사고를 통한 추론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신적이고 불사한다. 따라서 영혼은 해체되지 않으며 불사하며, 신과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영혼은 조화일 수 없는데, 조화로운 결합체는 구성물의 상태를 따르지만 “고통스러운 마음을 달랜다”는 구절만 보아도 영혼은 몸에 속하는 상태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 불멸인데, 이는 어떠한 것이 자신의 반대가 되는 것이 되는 일이 없다는 명제에서 기인한다. 삶은 죽음과 반대되므로 불사인 영혼은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소멸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멸하게 된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 다시 육신을 얻어 새 삶을 살게 된 영혼은 이전 생의 기억이 없으므로, 알던 진리를 되풀이할 뿐인 상태이지 않을까?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있어서 알게 됨은 다름아닌 상기”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아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는데, 어떤 것과 비슷한 것을 보고 다른 지식을 떠올리는 연상 작용이 일어날 때 연상된 것에 대한 사전적인 앎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각에 의해 같음을 구분하므로, 태어나면서부터 감각하던 이전에 같음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므로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한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며, 어떤 근심걱정없이 신적인 상태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최대한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과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인데, 죽음 이후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고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테네의 시민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무지를 깨닫고 지혜를 추구할 수 있는 삶을 살았고,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러한 자신의 생에 감사하며 아스클레피오스에 닭 한 마리를 빚졌음을 고한다. 이는 당시의 지인들, 나아가 아테네인들, 또한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사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살아숨쉬는 우리가 알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적어도 죽음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가 될 것인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면, 현재 주어진 삶을 죽음이 주는 감정에 구애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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